마취 없이 살을 잘라내고 봉합하며 수술을 한다는 게 상상이 되시나요?
이제는 너무도 당연하게 돼버린 마취기술이지만,
불과 170년 전까지만 해도 마취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환자들이 살을 절개하는 등의 큰 수술을 진행하면서
엄청난 고통을 견디다 못해 쇼크로 사망하는 일이 매우 빈번했습니다.


그만큼 마취가 없는 수술은 매우 끔찍한 일이었고,
환자의 고통으로 인한 수술 거부는 의학의 발전에도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삼국지연의에 등장했던 전설적인 명의 화타가
독화살에 맞은 관우의 팔을 치료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화타는 독화살의 독이 팔의 뼛속까지 침투해서 칼로 긁어내야 했고
이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울 테니 몸을 묶고 시술을 하자고 제안했지만, 관우는 이를 거절했죠.


시술을 시작하고 뼈를 긁어내는 소리가 너무 커 사람들이 질겁할 정도였으나
막상 관우는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하게 바둑을 두었다고 합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삼국지연의 소설에서
관우라는 인물을 신격화하고 부각하기 위한 허구에 불과합니다.
관우의 팔을 치료한 의원도 사실 화타가 아닙니다. 관우와 격을 맞추기 위해 최고의 명의인 화타를 등장시킨 것이며,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화타의 제자인 오보라는 의원이 시술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화타는 큰 치료에 '마비산'이라는 마취약을 썼다고 하는데,
아마도 스승인 화타에게 마취법을 전수받아 관우의 시술에 썼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무리 천하의 장군인 관우라지만 육신을 가진 한 인간에 불과한 이상,
결코, 뼈를 긁어내는 정도의 수술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고통을 참을 수는 없습니다. 절대로요.
전해져 내려오는 기록처럼 화타가 사용했던 마취산이 효과가 좋았고, 대중적으로 사용될 수 있었다면
인류는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부터 고통 없는 수술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마취산은 안타깝게도 오래전에 제조법이 소실되어 자취를 감췄죠.


인류의 역사가 시작한 이래 어떻게 하면 수술을 할 때 통증
을 완화할 수 있을까 하는 노력은
기원전부터 꽤 최근까지도 부단히 계속됐지만, 큰 진전은 없었습니다.
외과의들은 술에 잔뜩 취해 잠이 든 채로 수술을 하는 것을 권장했고, 특히 고대 이집트의 외과의들은 수술을 하기 전에 환자의 목을 졸라 반쯤 질식시킨 후 수술을 했다고 하니,
고통을 잊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아편이나 대마 등의 마약을 사용해 환자를 환각 상태에 빠뜨려
통증을 줄이려는 시도가 많았는데, 그렇게 효과가 뛰어나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너무 과도하게 사용돼 장기의 기능까지 마비되어 수술이 더 위험해지기도 했죠.
이렇게 마취가 발명되지 않은 시절에는, 이렇게 너무도 끔찍한 수술의 고통 때문에
수술을 받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고 생각하는 환자가 더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인류는 마침내 고통을 견딜 방법을 찾아냅니다.
여기 최초로 마취제가 널리 퍼졌던 사건이 있습니다.
1800년대 초 유럽에서, 영국의 발명가 험프리 대비가 아산화질소(N2O)를 마시면
참을 수 없는 웃음이 나온다고 하여 '웃음가스'라는 이름을 붙였고
감각을 무디게 만들기 때문에 마취제로도 사용할 수 있다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취에 대한 기록을 실험해 본 사람은 없었습니다.
대신 아산화질소 흡입 시 웃음이 나오는 효과를 놀이로 사용하는 사람이 늘어났고,
젊은이들 사이에서 웃음가스를 사용해 파티를 즐기고 노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1844년 미국의 코네티컷주의 하트퍼드에서 웃음가스 쇼가 벌어졌습니다.
관객들 가운데 자원자를 받아 웃음가스를 마시게 한 뒤
웃기는 행동을 하도록 만들어 이를 본 관객들의 웃음을 유발하는 쇼였죠.
가스를 마시고 기괴하게 웃으며 이상한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보고 관객들은 박장대소했습니다.
그중 한 자원자는 웃음가스를 마시고 크게 웃으며 정신없이 관객들 사이를 뛰어다녔습니다.
그러다 의자에 부딪혀 다리를 다쳐서 피가 철철 흐르는데도 상처가 난 것을 몰랐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치과의사 호레이스 웰스(Horace Wells)는
웃음가스, 즉 아산화질소가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고 짐작했고,
이를 치과 치료에 적용해 보기로 합니다.


그는 웃음가스 풍선을 사와 바로 테스트에 돌입합니다.
웰스는 스스로 풍선에 든 아산화질소를 마시고 조수에게 자신의 이빨을 뽑아보라고 시켰죠.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아산화질소를 마신 웰스는 치아를 뽑는 통증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는 의술에 마취를 최초로 적용했다는 생각에 매우 신이 났습니다.
웰스는 조금 더 테스트를 해보기 위해
자신의 환자들에게도 아산화질소를 흡입하게 한 뒤 치아를 뽑는 시술을 했고,
결과는 모두 성공적이었습니다.
아프지 않게 치과치료를 하는 의사가 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고,
호레이스 웰스는 유명인이 됐습니다.
그리고 웰스는 당시 의학의 중심지였던 보스턴에서 마취 시술을 공개하기로 하는데요.
하버드 메디칼 스쿨에서 강연을 한 뒤 관중 가운데 시술의 지원자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지원자는 웰스의 성공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사람이었고,
발치를 시연하던 도중 일부러 아프다고 고함을 지릅니다.
나중에서야 그는 사실 아프지 않았었다는 고백을 했지만,
이 고함으로 인해 웰스는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실험에 참관한 관중들은 웰스를 사이비 의사라고 비웃으며 조롱했고
사기꾼이라고 야유를 보냈습니다.
그의 억울한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고, 웰스는 이제 모두에게 조롱거리가 되었죠.
손님도 뚝 끊겨 치과의사를 그만둬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굴하지 않고 마취에 대한 실험을 계속 이어나갔습니다.
아산화질소 외에도 다른 마취제인 에테르를 연구하기도 하였죠.
그러나 그의 연구는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클로로폼이라는 마취제를 자신에게 생체실험하면서 그만 중독되고 만 것이죠.
이후의 이야기지만 클로로폼은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출산할 때도 사용됐었던 마취제입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별 탈 없이 세 자녀를 낳았지만, 사실 부작용이 매우 심했는데,
치명적인 심부정맥을 일으키고 중독성을 가지고 있어 1930년 완전히 퇴출당한 마취제입니다.
웰스는 이런 클로로폼에 취해 환각 상태에 빠진 상태로
거리를 걷고 있던 행인 2명에게 황산을 뿌린 혐의로 체포되어 뉴욕의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다 1848년 웰스는 자신의 기구한 인생을 비관하며
서른세 살의 나이로, 감옥에서 자신의 동맥을 끊고 자살했습니다.


그가 죽고 난 뒤 32년이 지나고 나서야 미국 치과협회는
웰스가 최초의 마취제 발견자임을 공식적으로 선언했습니다.
죽고 난 다음에야 그의 의학적 업적을 인정받은 것이죠.
그의 사후에도 마취에 관한 연구는 계속되었고
최초로 마취제로 사용됐던 아산화질소에서 에테르, 티오펜달, 클로로폼을 거쳐 할로탄,
이소플로렌 등의 새로운 마취제들이 쏟아져나왔고, 1983년 프로포폴이 개발되면서
가장 효과적이고 안전한 마취제로서 현재까지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호레이스 웰스는 한때 유망한 치과의사에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물러나 암울한 죽음을 맞이했지만,
마취에 관한 연구에 불을 붙인 도화선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가 웃음가스를 주의 깊게 관찰해
수술의 고통을 없애는 마취제로 사용한 사실이 어찌 보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주변을 유심히 관찰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에
곧바로 몸소 적용하고 실천하여 영향을 준 것이 지금의 발전된 마취학까지 연결된 것을 생각한다면,
세상을 더 낫게 만들려는 열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해줍니다.
웰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세상을 바꾸는 힘은 작은 발견과 행동으로도 가능합니다.
앞으로 주변을 조금 더 주의 깊게 관찰하는 습관을 들여보는 것은 어떨까요?
세상을 바꾸는 일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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